Friday, April 11, 2008

Braves won!

내가 석사 3학기때 Lee교수님께서 안식년이셔서 한학기동안 외국에 나가시게 되었다.
그동안 경영학과에 교환교수로 오신 이쁘장한 한국 여자분이 office를 쓰게 되셨다.
미국 뭐대학에서 오신분이라는데 미국인 남편도 따라왔다. 물론 남편은 한국말은 한마디도 못한다.

지금 미국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문이 잠겨있을때 복도바닥에 앉아서 기다리는 남편의 모습이 참 생소로왔다. 한국에서 누가 그 나이에 문 잠겼다고 바닥에 앉아서 기다릴까...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office로 전화를 했다.
물론 영어로 뭐라는지 잘 기억이 안나지만...
당근 wife있냐고 물어봤겠지...
수업갔다고 했다.
그러더니 난데없이 신이나서 "브레이브즈 원, 브레이브즈 원" "Do you understand?"한다.
알았다고 하고 끊었다.

수업에서 돌아오셨기에, 남편분이 전화를 하셨었는데, 성암이 "브레이브즈 원" 인가보죠 했다.

그랬더니 이 교수 웃겨서 자지러지는게 아닌가.

남편이 자기가 나올때 미국프로야구 World Series를 보고 있었는데, Atlanta Braves가 이겼다고 전화했을거라는 거다.

그게 1995년이었는데 Atlanta Braves가 우승했나보다.

귀빈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응용통계학과 대학원에 입학, Lee교수님 연구실에 조교로 들어갔다.

그방에 2명의 조교가 있을 책상이 있었는데, 고참의 자리는 안쪽에 신참은 문지기였다.

교수님은 점심 식사후 거의 어김없이 소파에서 짧은 오수(낮잠)을 즐기셨다.

그날의 사건도 바로 그 시간에 일어났다.

누군가가 문에 노크를 했다.
문을 열어보니 멋지게 차려입은 자신감에 차있어보이는 금테안경의 신사가 서류가방을 들고 교수님 계시냐고 물어본다.

나는 대단한 손님이 오신줄 알고, 곤히 주무시는 교수님을 깨우며 "교수님 손님 오셨는데요"했다.

그런데 그 자신감에 차있던 신사는 난데없이 비굴한 잡상인으로 변신
"교수님 책 좀 사시지요"
밤쯤 깬 교수님은 소파에 걸터 앉으셔서 고개만 연신 도리도리 흔드셨다.
그리고 그 잡상인은 포기하고 돌아갔다.

나는 죄송해서 어쩔줄 모르고,
교수님은 다시 낮잠에 빠져드셨다.

Sunday, January 6, 2008

Can I see your license?

Can I see your license?
경찰이 교통위반이나 사고를 일으킨 운전자에게 면허증 달라는 소리다.

미국온지 몇개월 안되었을때 일이다.
Harris Teeter라는 식료품점에서 먹을것들을 사고있었다.
보통 여기서는 영화에서 봐서 알겠지만 큰 cart를 밀고 다닌다.

cart를 밀고다니며 이것저것 살피다가 식료품을 쌓아놓은 벽을 살짝 박았다.
그랬더니 근처에 있던 미국여자애 하나가
"Can I see your license?"라는 아주 적절한 농담을 날렸다.

보통은 깔깔거리고 웃고 수다 좀 떨다가 전화번호를 따왔을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난 그 순간 그게 무슨말인지 이해가 안됐다.

여자애가 상황파악을 못하고 눈만 껌뻑거리고 있는 나를 바라보다가
별 반응이 없자 뻘쭘하게 사라져갔다.

10여초가 지나서야 그 농담이 이해가 갔다.

그때 그 농담을 이해하고 전화번호를 따왔더라면 내 영어가 좀 늘었을려나?

과대표의 질문...

3학년 1학기때 수리통계학 I을 들었다.
경제학과에 배정된 교수님은 파평 윤씨의 후손 윤기중교수님이시다.

중종의 두 왕비가 모두 파평윤씨일 정도로 유명한 외척이다.
"대장금", "여인천하"의 중전이 중종의 둘째부인으로 그 악명높은 명종의 생모 문정왕후 윤씨...
인종의 생모인 장경왕후 윤씨가 죽자 후궁들도 엄청 많은데 새장가를 든것이다.

중전은 아무나 안시키나보다...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이후 반정공신들이 자격도 없는 여인들과 연을 맺고 후궁으로 줄줄이 들여보낸다.
그중 별 연줄은 없었는데 유일하게 가문이 좋은분이 나중에 중전이 되는 장경왕후 윤씨였다.

경제학과 학생들은 윤기중 교수님을 "이야기 연세사"라고 부르곤 했다.
원로 교수님이신지라 수업시간의 절반이 옛날 얘기였다^^

수리통계 II는 안박사님으로 신청했다.
옮겨서 그런지 수업을 듣는데 정말 아무것도 이해못하겠다.
그런데 질문하는 학생들이 아무도 없다.
아! 나만 모르는구나...
한학기를 어떻게 살아남나...
걱정이 태산이었다.

경제학과 과대표는 운동하냐고 정신없어서 수업에 안들어온다.
그런데 통계학과 과대표는 운동에서 오는 피로로 꾸벅꾸벅 졸면서도
맨앞에서 열심히 수업을 듣는게 아닌가.

일주일쯤 지났는데 그 과대표가 오랜 적막을 깼다.

"교수님 H & C가 무업니까?"

황당한 표정의 안박사님...
"Hogg & Craig 인데..."

모든 학생들이 이제 알았다는듯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그때야 알았다. 아무도 수업을 이해하는 넘이 없다는걸...

이유인즉...

교재가 두권이다.

한권은 Hogg 와 Craig의 공저이고
다른 한권은 Mood, Graiville, Bose 3명 공저였다.

안박사님은 필기하실때 첫번째 책에 있는거면 저자의 첫자인 H&C
두번째 책에 있는 내용이면 MGB라고 쓰신거였다.

학생들은 그것조차 모르고 칠판에 쓰신걸 그냥 열심히 필기한것이다.
사실 수업시간에 칠판에 있는거 받아적기만도 힘들었다.

친구하나가 복습을 한다면 연습장에 필기하고 노트에 나중에 옮겨 적곤했다.
몇일 하더니 1시간짜리 수업인데 1시간 30분이 걸린다며 관뒀다.

그때 혼자서 교재 두권을 엄청 공부했었다.
그래서 문제를 푸는데는 지장이 없었는데
사실 전체적으로 내가 뭘하고 있는지 잘 모를때가 많았다.
그러던것이 대학원시험 준비할때쯤 되니 신기하게도 큰 그림이 그려졌고
나중에 다시 보니 안박사님 필기는 교재 2권의 액기스였다.

세월이 해결해주나보다...

생각해보면 3학년 2학기 그리고 4학년 1,2학기 합해서 3학기가
지금까지 공부를 제일 많이 한때였다.
그때 사실상 경제에서 통계로 과를 옮겼다고 생각했기에 위기감과 의욕이 넘쳤다.
대학원 들어가서도, 심지어는 유학와서도 그때 반정도나 했을까...
사실 그이후 별로 동기부여가 안됐다.

하여간 그때 나에게 혼자가 아니라는걸 확인시켜준
통계과 과대표의 질문을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아쉬운 판정승...

통계학과 대학원에 수학과출신이고 나와 고등미적분을 같이 듣던 이기봉이란 친구가 있었다.

이름이 이기붕도 아닌 이기봉이다...

기봉이의 어머님께서 숙대근처에서 "비노로소"라는 고급 레스토랑을 경영하셨다.
전에 살던 집을 개조해서 만드셨단다.
개업식때 갔었는데 다시 오기 힘들 정도로 너무 고급스러웠다.

이친구가 석사논문 발표를 했다.
안박사님이 지도교수였다.

"비노로소"로 안박사님을 모셨는데 썰렁할까봐 몇명 더 불렀다.
나, 민정선배, 기정...

계속 더블로 시키셨다. 2잔크기의 좀 큰잔으로...

5잔 마셨던걸로 기억한다. 더블이니 10잔이다...

그리고 와인 2 잔 정도...

민정선배는 연일 계속된 자체 음주가무로 그날만은 몸을 사리고,
기정이는 원래 못 마시고,
기봉이는 차때문에 안마시고 있었다.
아마 와인 한잔정도만 마셨을거다.

그래서 내가 안박사님과 보조를 맞췄다.
기봉이가 나에게 안박사님 상대 술상무라는 엄청난 임무를 부여했던 것이다.

1차전의 양상...

누가봐도 나는 멀쩡했다.
안박사님 좀 취하셨는지 커피를 흘리시며
"애이 나만 취했어..."라고 투덜대신다.

으흐흐 오늘은 나의 판정승으로 기록될 날이었다.
증인도 많았다.
그런데 11시인데 2차를 가자신다.

기봉이와 나만 따라갔다.

폭탄주...

난 2잔 마신 기억까지만 난다.
그러니 기봉이와 나와 겹치는 건 폭탄주 2잔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왠 디스코텍이다.
기봉이가 춤추다가 넘어져서 내가 부축하냐고 정신이 든것이다.

그리고 또 기억이 안나는데 잠시 한쪽 눈만 살짝 떠보니
우리와 같은 테이블에 왠 여자애들 5-6명이 무척 어색하고 썰렁하게 앉아 있었다.
깨어있더라도 재미없는 난 잠만 자고 기봉이는 완전 맛이 갔으니 걔들이 무슨 재미가 있었을까...

그리고 또 기억이 안나다 정신을 차려보니
왠 지하실같은데 등빨좋은 애들한테 둘러싸여있고
두목인듯한 놈이 의자에 앉아서 돈을 내라고 다구치고 있었다.

기봉이는 논문발표해서 정장을 하고 있었고,
나는 허름해서 그런지 기봉이만 다구쳤다.

술취한 우리는 무서울게없었다.
불의에 굴하지않고 원칙, 정의에 의지해
못내겠다고 계속 버팅겼다.

사실 그때 사태파악이 전혀 안되고 있었다.
우리는 왜 돈을 내야하는지 정말 모르고 있었다.

특히 나는 잘 자고 있는데 어떤넘들이 우리를 납치해서
지하실에 가두고 삥뜯는다고 생각했으리라...

한놈이 때릴려고 한다.

그런데 두목같아 보이는 넘이 그냥 보내라고 한다.
우리가 너무 취해 막무가내여서 두목의 오랜 경험상
문제 안일으키고 돈받아내기는 힘들다고판단했으리라.

둘이 걸어오면서
우리가 왜 돈을 내야돼?
맞어 맞어! (대장금 아역 연생이 대사^^)
이렇게 투덜대며 왔던것같다.

그후 몇일동안 정황을 추리해보니,
기봉이가 삐끼를 따라갔고, 부킹을 해서 테이블에 있는 여자애들의 술값도 내야하는 상황이었다..
기봉이의 술버릇은 삐끼 따라가기, 안되는 영어하기였다.
난 잠자기...

그런데 문제는 기봉이도 나만큼은 마신다.
우리 둘이 겹치는 부분은 겨우 폭탄주 2잔이다.
안박사님이 무사하실까?

대낮이었지만 몇번 전화를 해보았는데 사모님도 안계신지 안받으신다.

그런데 그날은 통계학과 대학원생들 산으로 놀러가는 날이었다.

나중에 한 후배(아마 최수정)가 안박사님 오셔서 술만 엄청 드시고 집에 가셨다고 알려주었다.

경이적이다... 주신, 주성...
말로만 듣던, 설마설마하던 안박사님의 무한주량을 몸소 체험하고야말았다.

몇일후 복도에서 안박사님을 만났는데 대뜸 하시는 말씀이

"임마 넌 잠만 자냐!"

2차를 안갔으면 주신을 상대로 판정승이었는데... 아쉬움이...

경제 -> 통계

수학, 과학을 좋아했었다.
그런데 싫은 과목은 죽어도 공부안한다.

그덕에 국민윤리, 사회는 심심찮게 양도 나왔다.
그래도 개의치않았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문과에 갔다.
내가 싫어하는 과목이 너무 많았다.
결국 학력고사때 남들 다 맞는 사회, 지리는 20점만점에 12점, 14점이었다.

고3이 뭘 아냐...
그냥 경제학과가 목표였다.
그땐 순진하게도 경제학과를 졸업하면 경제를 알게될줄알았다.
그리고 좋아하던 수학을 많이 쓸것같았다.

1학기는 열심히 술도 먹고, 우쩌다 학회에 들어서 금서도 많이 보고,
그당시 1학년 치곤 공부도 좀 했다.

2학기때 경제원론 수업을 듣는데,
케인즈의 유명한 방정식 Y(소득) = C(소비) + I(투자) 가 나왔다.
소비를 소득의 함수로 보고 미분해서 승수를 구하고 했다.

소득이 늘면 소비가 상식적으로 늘것이다...
그런데 투자는 소득이 증가해도 변하지않는 상수로 봤다.
그래서 미분하면 0이다.

소득이 늘어도 투자가 그대로?

성백남교수님께 왜 투자가 소득의 함수가 아니냐고 따졌다.

멀뚜멀뚱 쳐다보시더니 무성의하게 "그냥 가정이야..."하셨다.

투자를 소득의 함수로 보고 승수를 구하려고 해봤다.
더럽게 복잡해지고 뭐가뭔지 해석이 안돼는 결과가 나왔다.

"내가 수학을 잘 못해서 그런거야"라고 자책, 수학을 부전공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는 수학과 선배가 있었다. 바둑이 1급이다.
자기는 성적표 받으면 성적표가 대문자로 나오는지 소문자로 나오는지 잘 모른다고 항상 자랑했다.
보통 C라는 얘기다.
그땐 성적 안나오는것도 자랑이었고, 쌍권총을 차도 낭만이고 멋이었다.

그런데 그런 선배에게 무슨 과목을 듣냐고 물어본게 애초에 잘못이었다.
나중에 친해진 수학과 애덜이 배꼽을 잡았다.
차라리 동전을 던지는게 나았을뻔했다.

고등미적분을 들으란다. 한과목이 무려 4학점이다...

내가 기대한건 해석학이나 위상수학같은 좀 추상적인 과목이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교재가 공업수학이고, 한학기내내 미분방정식만 풀었다.
열라 미분방정식만 풀다가 나중에 열받아서 조교한테 이런 과목이 수학과에 왜 있나고 따졌더니
수학과애들이 너무 추상적인것만해서 나중에 미적분을 잘 못해서 그걸 방지하는 목적이란다.

나혼자 타과 출신인지라 위압감에 공부를 과도하게 해서 성적은 잘 나왔지만
부전공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었다.
그것이 친해진 수학과 애들을 안타깝게했다.

2학년때까지는 이래저래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사"자가 들어가는 과목을 배우기 시작했다.
경제사, 경제학설사...
무조건 외워야하는 과목이다.
"사"자가 들어가면 난 "C"아니면 "D"다.
고등학교 사회, 국민윤리의 재판이었다.

그때쯤 깨닭은것은 Y = C + I 에서 투자(I)를 고정된것으로 가정하듯이
현실은 너무 복잡해서 비현실적인 가정을 마구 할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세상이 수학적인 원리로 설명될수있다고 생각했었나보다.
그런데 그렇지않다는걸 깨닭은 것이다.

세상은 설명될수없다는 좌절감이 3학년 1학기를 놀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작은 책자에 2페이지로 "양자역학"을 소개해놓은 글을 읽게되었다.

뉴톤식 기계적 세계관과
양자역학의 확률적 세계관을 비교해놨다.

뉴톤시대의 과학자들은
입자가 하나 있을때 그것에 주어지는 힘과 힘의 방향을 안다면 어디로 얼마나 움직일지 예측할수있다고 생각했다.

양자역학에서는 어디로 갈지는 모르나 확률은 계산할수 있다는 식이었던것같다.

기계론적 세계관은 이미 아니라는걸 알아버렸다.

뭔가 해야하는 그 혼돈기 나에게 확률이란게 마음에 쏙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사실상 통계학과 학생이었다.

싫어하는 sampling을 제외하고 모든 전공필수와 왠만한 선택과목을 다 들었다.

통계학과 졸업사진찍는 날, 허름하게 입고 왔다갔다할 때까지,
통계학과 복학생들은 내가 자기네과 학생인줄로만 알 정도였다.

대학원을 통계학과로 가기로 했다.
나와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통계학과 선배왈... "미친 놈"
이 확신에 찬 힘있는 한마디가 경제학 경영학에 밀리는 그당시 통계학과의 위상을 설명해준다.
그러나 요즘 상대에서 경제학과는 비인기학과로 전락했다.

물론 내가 미래를 예측해서 그런 선택을 한것은 아니었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하고싶은걸 해야한다.

통계학과 대학원에 들어와서 1학기만 열심히 하고 통계학에도 수학에도 흥미를 잃었다.

수학은 가정들로 가두어놓은 세계에서 성립하는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이었고,
통계학은 그 부산물이었다.

그때부터 쌓아놓고 책만 읽었다.

재능은 없지만 문과생이 된것이다.

신호등...

이건 대학원 다닐때 얘기다.

안박사님께서 강의하시던 통계상담시간에
이원우교수님께서 외부강사로 초빙되셨다.
물론 강의내용은 하나도 기억 안난다.
수업이 끝난후 여느때처럼 교수님들, 일수선배와 2차를갔다.

술은 못드시나 술자리에 빠지지않으시는 김철응교수님도 오셨다.
막판에 다들 맛이 가면 뒤치닥거리를 많이 하시곤하셨는데,
그것이 대학원생들 사이에 미스테리중 하나였다...

나의 주량은 소주 2병...
멀쩡하다가 그거 넘어가면 딱 끊긴다.
한마디로 해롱해롱하는 중간단계가 별로 없다...

불행히도 안박사님 epsilon-delta근방에 앉게되었다.

그날은 몸을 좀 사리고 있었는데
"안씨가 왜이리 술을 못마셔!"라는 안박사님 말씀에 분발 엄청 마셨다.
생각해보면 주량을 넘겼던것같다.
사실 주제넘는 헛소리도 했던게 기억난다^^

으흐흐 난 안박사님, 김철응교수님께서 기억력이 엄청 좋으시다는걸 잘 안다.
그러나 술자리니까^^

느즈막히 건대에 있는 서한손선배가 항상 그러듯이 귀찮은데 왜불렀냐는 태도로 들어왔다.
사실 속으로 좋아하고 있다는걸 아는 사람은 안다.
술값을 내기 전까지는^^

안박사님은 학생들은 사주고
job잡으면 회수한다는 아주 합리적인
그러나 job잡은 나에게는 더 이상 합리적으로 안들리는 주의셨다.

그래서 서한손 선배가 호출되어 계산했던걸로 기억한다...

교수님들은 불쌍한 서한손선배와 딴데로 가시는데
내가 서한손 선배를 탈취해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때 나 엄청 취한거 맞다.
내탓이 아니었다.
"안씨가 왜이리 술을 못마셔!"라고 하신 안박사님 탓이리다.^^

하여간 서한손선배와 맥주집으로 갔다.
그리고 맥주를 마셨는데 그때부터 기억이 잘 안난다.
소주를 꽤 마신후 맥주를 마시면 대개 이렇게 되기 마련이다...

하여간 나땜에 일수형 고생했다.

우리집으로 가는 버스는 경이적으로 늦게까지있다.
새벽 2-3시에도 타본적이 있었다.
그래서 일수형이 성신여대입구에서 내려줘서 좌석버스를 기다렸다.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 제대로 골라서 탔다

잤다.

깼다.

내가 탄 버스옆에 차들이 일렬로 쫙 있었다.

신호등이군...


또 잤다.

깼다.

또 신호등이군...


또 잤다.

깼다.

또 신호등?

내가 좀 어리버리 하지만 세번은 안속는다.
정신을 추스리고 주위를 자세히 살펴봤다.

앗! 차고였다.

종점 차고여서 차들이 옆에 나란히 서있는걸
나는 신호등에 걸려서 서있는줄로만 안것이다.

치사한 운전사 아저씨 "다 왔어요! 내려요!" 한마디하고 총총 집에 갔겠지...

다행히 집이 그리 멀지않아 비틀비틀 터벅터벅 걸어갔다.

다음날 나는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울렁거려 지하철에서 몇번을 내리면서 학교를 가야했다.

독일어 선생과 빵돌이 (실화)

모짜르트 얘기하다가 독일어선생님 얘기가 나오는 바람에 그 선생님에 얽힌 정말 황당했던 사건이 하나 생각난다.

이건 고등학교 선배한테 들은 얘기다.

나는 경동고등학교를 나왔다. 학교에 매점이 하나 있는데, 학생용과 교사용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거기서 우동을 팔고, 고속버스 매표소 같은데서 빵도 팔았다. 그 매표소같은 곳을 주로 지키고 있던 사람은 교련선생님중 한분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빵돌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 독일어 선생님이 새로 부임했다. 사람이 작고, 동안이어서 영락없이 학생처럼 보였다.

처음 부임한지라 잘 몰랐는지 점심시간에 학생용 식당에서 우동을 드시고 "식후 연초는 불로초"라고 한대 태우셨다.

빵을 팔다가 이를 본 우리의 빵돌이, 어떤 대담한 놈이 감히 시뻘건 대낮에 나의 영역인 매점에서...

다짜고짜 달려들어서 마구 팼다... 얼떨결에 영문모르고 맞던 독일어 선생 사태를 파악하고 새로온 선생이라고 밝혔다.

맞던 독일어 선생이나, 때리던 빵돌이 얼마나 황당했을까...

"너무나 황당한 현상에는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교훈...